< 송종건의 문화시론 I - 한국무용음악협회(회장 : 김은수) 창립 20주년을 축하하며 >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보면 무용의 역사가 보인다고 한다. 문자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시작한 시대의 이전시대를 말하는 선사시대 때부터, 우리 인류는 각 종족별로 전쟁, 평화, 가뭄, 수확, 탄생, 등 중요하고 기쁘거나 혹은 정말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 모두 함께 모여 춤을 췄다고 한다. 이때 각 부족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사람이 그 부족을 대표해서 하늘과 대화하는 춤을 췄다고 한다. 주로 타악기 위주의 음악이 함께 힘찬 사운드를 내면서 무용을 독려했을 것이다. 음악과 무용은 그 탄생의 유래부터 하나의 몸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밀접함은 현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로맨틱발레 'Giselle‘이나 클래식발레 ‘Swan Lake‘와 ’Sleeping Beauty’ 같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발레는 아돌프 아당이나 차이콥스키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없었으면 그 탄생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 모던발레 시대로 넘어와서도 러시아 출신의 미국 뉴욕시티발레단의 상임안무가였던 조지 발란신은 자신의 무용은 아름답고 유려한 음악이라는 바닥을 깔아서 걸으며 이루어진다면서 무용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에 대한 예술적 반발로 1960~70년대 미국 포스트모던 무용수들이 “우리는 우리의 무용에서 그 음악이라는 바닥을 걷어낸다며 실험적인 안무와 움직임을 과격하게 실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21세기 초반을 지난 이제 지금은 음악과 무용은 이지적이고 지성적인 협력을 다시 하고 있다. 서로의 장르들의 예술적 특성들을 ‘상호 존중(mutual respect)’ 하면서, 창의적인 ‘예술협력(artistic collaboration)’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용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음악이 해야 할 일은, 무용 연습과 공연을 위한 훌륭한 음악 연주가 필요하고, 또 음악작곡가들은 창의적 작곡을 해내야 한다. 말 그대로 이제 ‘음악과 무용’ 그리고 ‘무용과 음악’이 한 몸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고, 그런 예술작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해나가야 하는 ‘학회’가 너무나도 절실한 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들에게는 이미 20여 년 전에 선각자적인 신념으로 설립된 ‘한국무용음악협회(회장 : 김은수 국민대학교 교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난 20여 년 동안 거쳐 간 20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국민대학교 김은수 교수와 회원들이 우리나라 무용음악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한국무용음악협회를 자신들의 생명처럼 지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지난 12월 9일 세일아트홀에서 한국무용음악협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및 연주회가 있었다. 그래서 평자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있었던 원로 피아니스트 장혜원 교수님의 ‘피아노와의 삶 80주년 장혜원 음악회’ 공연을 보자 말자 바로 한국무용음악협회 기념 및 연주회장으로 갔다.
소녀 같이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이날 공연 전 기념식에서는 무엇보다도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외로움을 함께 극복한’ 회원 상호간의 진지한 격려와 축하와 강인한 신념으로 충만했다. 음악과 무용, 그리고 무용과 음악, 중간자의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은 예술 활동을 해온 회원들이 서로 의지하고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은수 회장은 인사말에서 “처음에는 외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후배들을 보니 든든하다”는 인사말을 하고 있었고, “혼자 각개전투를 벌이다가, 아군을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고 “협회에서 함께 의논하고 협조하면서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축하메시지를 보내는 회원들도 있었다. 한 마디로 개척자로서 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지만 열정적으로 일해 왔을 것인가 하는 것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는 말들이었다. 또한 한국무용음악협회는 20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념음반을 발매했고, 음반에 담긴 음악들을 악보책으로 출판했다. 팸플릿에는 여기에 함께 한 협회원들이 현재 국내외 어디에서 활동하고 있는가 하는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먼저 국외의 경우를 보면, 김나래 선생(이하 경칭 생략)은 프랑스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 중이며, 김소현은 캐나다 국립발레학교에서 일한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김윤정이 선화예중, 김한나가 경북예고, 김지연이 경희대 한성대 한예종영재원 등에서 일한다. 김지현은 국립발레단 한예종 경희대 등에서 일하고, 서민정은 유니버설발레단과 선화예고에서 활동 중이다. 백채영은 서울예고에서, 안보미는 선화예중에서, 성현지는 한예종과 안양예고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유연하는 서울예고와 국민대에서 활동 중이며 안혜원은 계원예고에서 일하고 있다. 이예정은 덕원예고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소정은 서울탄츠스테이션에서 활동했다.
이주현은 이화여대와 국민대에서 일했고, 이현정은 서울예고에서 활동한다. 정아름은 선화예중 그리고 주세영은 광주예고와 광주시립발레단에서 근무하고, 지하영은 계원예중에서 일한다. 최경화는 국민대에 근무 중이며 최선경은 선화예중에서 활동 중이다. 홍수정은 한예종 한예종영재원 선화예고 등에 근무 중이며, 정지인은 Piano music for ballet class 1,2 연주 등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태희는 예원 발레블랑 서울탄츠스테이션 등에서 활동 중이다.
여기서 또 하나 꼭 적어두어야 할 것은 이들은 자신들의 전공에서 성적 등이 밀려서 새로운 영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전공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유지했지만 타 예술과의 협력이라는 강한 신념과 호기심으로 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대표적으로 이 학회 김은수 회장도 이화여자대학교 피아노과를 전액장학금을 받고 들어가, 성적우수자들에게 주는 이화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 사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이날 공연도 단정하고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성현지는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Le Tombeau de Couperin>에서 현란한 알레그로의 건반터치로 꿈결 같은 연주를 이어갔다. 발레클래스 음악을 연주한 안보미는 <Barre Works>에서는 프리에 동작 연주 등을 마치 선생님이 착한 학생에게 뭔가를 속삭이는 듯 이루어나갔고, <Center Works>에서는 연습실을 힘찬 점프로 가로지르는 듯한 명쾌한 연주를 선명하게 이루어냈다. 홍수정은 쇼팽의 <Waltz, Op.42>를 객석과 온화하게 대화하듯이 연주했고, 김윤정은 샤미나드의 <Air de ballet, Op.30>에서 여름날 흰 바다 물결이 시원스럽게 흘러넘치는 듯한 열정적인 연주를 매혹적으로 이루어냈다.
그리고 성현지와 홍수정이 함께 새뮤엘 바버의 <Souvenirs, Ballet Suite for 1Piano 4 Hands, Op.28>을 진지하게 이루어냈다. 사실 평자는 음악이나 무용을 실기적으로는 배운 적이 없고, 무용을 포함하는 순수 클래식 공연예술을 미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그리고 정치학적으로 학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클래식예술 강국 서구에서는 음악과 무용이 현장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고 이름답게 만나고 있는지는 정말 잘 알고 있다. 이는 평자가 영국 런던에서 대학원 과정을 하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발레 수업 교실에서 들려 왔던 실황 피아노 연주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기억 등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서구에서는 또 현대무용 연습이나 공연에서도 비록 타악기 하나를 사용하더라도 꼭 연주자들이 직접 연주하는 살아 있는 음악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발레 연습 등에 음악은 정말 특별한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피아니스트가 직접 연주하는 살아 있는 음악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무용 공연장과 연습실에서는 라이브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무용음악협회 같은 학회에서 훌륭한 무용음악 연주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분들이 무용하는 분들과 함께 만나 창의적 예술 표현의 새로운 경지를 더 활짝 열어주었으면 한다.(송종건/월간지 무용과 오페라 발행인/sjkdc@hanmail.net)